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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금강내산

by dreamlove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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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HAM입니다. 

이번에 소개시켜드릴 그림은 겸재의 금강내산입니다. 

 

 

그림을 보기 전에 겸재정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림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은 그의 작품이나 이름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로 1676년 태어나 1759년까지는 진경시대라고 하는데요. 진경시대는 숙종대에서 영조개까지를 말하는데, 겸재의 활동기인 영조대에는 진경시대 중에서도 전성기에요.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 화풍을 창시했고, 뛰어난 진경 산수화소 명성을 날린 화가립니다. 우리강산, 우리 것도 충분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라는 자극심을 심어주기 충분했고, 풍경을 실감나게 과장시킨 점을 감각적이게 그려냈습니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등이 유명한데 오늘 이웃님들에게 보여드릴 그림은 금강내산입니다.

이 작품은 정선이 72세 시에 그린 대표작으로 해악전신첩 안에 합장된 21명 중 한폭입니다. 간송미술관전시 때 직접 보실 수 있는 그림 중에 하나입니다.

 

 

겸제는 숙종 37년 신묘레 36세의 한창나이로 단금의 벗인 진경시의 대가 사천 이병연이 금강산 초입의 금화현감으로 나가 있는 기회에 사천의 초청을 받아서 승인 삼연 김창읍을 모시고, 금강산을 처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삼염과 사천은 진경사로 금강산을 사생을 하고, 겸재는 진경산수와로 금강산을 사생하여 이를 합장하고 해악진신첩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는데, 이 시화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겸재 정선은 일약죽중 제일 명화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해악전신첩을 다시 꾸미고자 해서 36세부터 72세까지 금강산을 다시 여행을 하여 36세 그린 그림을 72세 노대가의 솜씨로 다시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천의 시는 생존하고 있는 사천에게 다시 쓰게 하고, 돌아가신 스승 삼연의 시는 동문의 벗인 강원감사 우산 홍봉조에게 쓰게 해서 예전처럼 찹장을 하여 해악전십점을 다시 꾸며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꾸며진 그 후 속에 이 금강새산이 합장이 되었어요. 금화에서 금성을 거쳐서 내금강으로 들어가려면 단발령을 넘어야하는데, 그곳에 올라서면 비로봉을 주봉으로 하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백색화강암 암봉들이 마치 한 떨기를 흰 연꽃송이처럼 눈앞에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 감흥을 겸재는 부감하는 시각으로 포착해 내금강 전경을 한 화폭 안에 담아냈습니다.

 

 

이 방법은 겸재가 노년기에 터득한 우주 자연의 섭리를 조선성리학에 투영시켜서 진경산수화로 반사해낸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금강내산이란 겸재 자필화제라래 겸제라는 관서가 있고, 정, 선 이라는 두방의 방형 백문인장이 찍혀있습니다.

 

 

대학원을 다닐때 겸제 정선 그림을 임모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필력의 중요함이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강약조절을 잘하시는지 꼭 살아있는 듯합니다. 그 당시 교수님한테 필력을 기르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색보다 선이 들어가는 산수화이기 때문에 필력이 없으면 그림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호분이 살짝 칠해지는데, 그 농도 조절도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조만한 저도 다시 임모를 해보아야겠어요.

다음에는 예전에 제가 작업했던 그림 중 하나를 소개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