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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초상화

by dreamlove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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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시대에 그린 제갈량 초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갈공명으로 널리 알려진 제갈량은 한나라가 멸망한 뒤 위촉오 세 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한나라 왕실의 후예임을 내세운 유비를 도와 촉나라를 이끈 명재상입니다. 그의 초상은 조선 후기 문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숭명배청 풍조와 군신일체의 북벌 의지를 드러내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오랜 기간 애호되었습니다.

 

주자학의 발달과 제갈량 숭배의 확산

 

삼국시대 지략가인 제갈량에 대한 숭배는 남송 대에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오랑캐라 여겼던 금나라에 중원을 빼앗기고 막대한 세폐를 바쳐야 했던 남송 지식인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은 중원을 호령하던 조조의 위나라보다는 변방의 작은 나라였지만 한나라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지켰던 유비의 촉나라와 더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남송의 주희는통감강목을 집필하며 춘추대의에 따라 역대 왕조의 정통성을 가려내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오상을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는자치통감을 펴낸 북송의 사마광과는 달리 촉나라가 한나라의 역사적 계승자임을 선언하는 촉한정통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삼대 이하를 의로써 논한다면 오로지 제갈공명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는 주희의 평가는 바로 이러한 촉한정통론의 발로이며, 아울러 후대 성리학자들이 제갈공명 숭배 풍조를 확산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고려시대에 성리학과 함께촉한정통론과 제갈공명 숭배 풍조도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희의통감강목은 이미 고려 말 정몽주가 언급한 이래로, 조선 초부터 경연의 교재로 사용하고 세종 16년에는 갑인자로 인출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제현은 아미산에 들러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에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제갈공명에 대한 숭배는 조선 후기 들어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고마운 기억과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을 안겨 준 청나라에 대한 반감은 명청 교체기에 대세를 따라 청나라를 추종하기보다는 명나라에서 끝나 버린 중화의 정통을 계승해 오랑캐 북벌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조선중화 의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조선 왕실 및 송시열 같은 17세기 조선 성리학자들은 비록 나라는 멸망했어도 명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했던 촉나라의 제갈량이나 남송의 무장 악비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롤모델을 찾고, 이들을 애국자로 칭송하면서 그 숭배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했습니다. 17세기에 존명배청과 조선중화 의식의 대두는 이 시기 제갈공명 사당 건립과 초상 제작 및 그가 쓴 출사표의 확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제갈량 사당 건립과 초상 안치

 

조선 최초의 제갈량 사당은 임진왜란 이후 건립되었는데, 이를 주도한 것은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며 청나라를 배척하고 북벌을 주장하던 송시열과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일찍이 선조 말년인 계묘년 또는 을사년에 임진왜란을 극복하겠다는 뜻을 담아 어명으로 평안도 영유현에 제갈무후묘를 설립한 이래, 병자호란 후 이민서의 상소를 계기로 현종 8년 묘호를 와룡이라 사액하고, 숙종 12년에 중건비를 세웠으며, 영조 39년에는 다시 삼충사라 사액하는 등 왕실의 지속적인 후원이 있었습니다. 

 

남양의 제갈무후사는 남양 현감민시중과 시골유생들이 1666년경 창건했는데, 촉한의 제갈량과 남송의 호안국,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순국한 윤계를 제사하는 사당이었습니다. 현종 10년 용백사라는 사액을 받은 뒤 18세기 영정조 대에 걸쳐 왕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조선에서 제작한 최초의 제갈공명상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하사해 평안도 영유현의 와룡사에 안치했던 작품으로 추정되며, 용백사의 제갈공명상 역시 와룡사의 것과 유사한 도상이거나 그 모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두 사당의 건립과 중수 등을 주도한 세력이 송시열과 그의 제자들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1661년 부교리 이민서는 영유현에 있는 와룡사의 중수를 청하는 상소에서 적을 토벌하고 국가를 부흥할 호걸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비쳤는데, 비록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제갈공명 사당 건립 취지에 북벌 의지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의 군주와 17세기 성리학자들은 오랑캐를 정벌하는 데 뜻을 같이할 제갈공명 같은 지략가가 어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 초상을 모셨던 것입니다.

 

제갈량의 용모에 대한 인식과 전형적 도상

 

와룡사의 무후상은 1902년에 도둑맞아 지금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조선에서 처음으로 그린 제갈무후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누가 그렸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삼국지 촉서에 제갈량은 키가 여덟 자고 용모는 매우 위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제갈량이 살던 시대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당대 화가 염립본이 그린 <제갈량화상>이 남송 대까지 여러 차례 중모(다시 그리기)되어 전래되었다고 하나 이 또한 전하지 않습니다.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에 원대에 그린 <제갈량상>이 소장되어 있는데, 맨발에 여의를 들고 평상에 앉은 모습이 죽림칠현 같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은사 혹은 신선을 표현한 것과 유사해, 맨 처음 제갈량 화상의 흔적을 흐릿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갈량화상>은 원대에 제작한 것인데, 비록 작은 목판본이나마 전상삼국지평화(1321~1323)에 그려 넣은 삽화에서 학창의에 우선을 들었거나 수레를 탄 제갈량의 모습을 최초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청대에는삼국지연의의 인기를 바탕으로 얼굴이 관옥같이 희고, 머리에는 관건이요 몸에는 학창의에 손에는 우선을 들었으며, 세간을 벗어난 신선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다.고 하는 제갈량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구축되었습니다. 

 

제갈량의 용모 설명은 모두 나관이 지은삼국지연의(14세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묘사는 석각충효절의도(1493) 와 역대고인상찬(1498), 삼재도회(1609)의 제갈량상 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 초상에 보이는 전형적인 제갈량의 모습은 관건에 학창의를 입거나 여기에 더해 우선을 들고 있는데, 조선에 수용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표현법은 민간 화가들이 그린 무속적인 분위기의 제갈량상과는 크게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필선의 굵고 가는 변화가 크지 않으면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필법과 전통 배채법 에 바탕을 둔 고아하고 섬세한 채색은 이 인물화의 작가가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원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줍니다. 우안칠분면의 화상이라는 점과 후덕한 인상에서 1695년에 제작된 숙종 어제 <제갈무후도>의 도상과 연결되는 듯하지만, 팔량형의 관건과 띠라든지, 오른손에 잡고 어깨에 받친 우선과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옷 주름에서는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숙종 어제 <제갈무후도>에 비해 도상은 좀 더 복잡해지고, 자세는 좀 더 자연스러우며, 필법은 좀 더 양식화되어 보입니다. 따라서 같은 화원 출신의 화가가 그렸다고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숙종 어제 <제갈무후도>가 그려진 1695년보다 앞서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합니다. 한편 총 8열 10행의 작은 글씨로 쓰인 제갈무후화상찬의 정중함과 화려한 채색 및 상당한 크기를 갖는 단독 전신 입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작품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갈량 사당에 안치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추후 유사한 도상의 제갈공명상의 발굴과 관련 자료의 비교 검토가 되면 제작 추정 시기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음에는 다른 작품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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