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M입니다.
오늘은 두작품에 대해 소개시켜드리려고 합니다. 한작품은 철종어진이고, 하나는 고종황제어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초상화작품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2005년 한 강연에서 조선은 초상화의 왕국이라고 할 정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 중에 어진은 몇점 남아있지 않고, 조선 왕 27명 가운데 19명이 어진을 그렸지만 이성계와 세조 이유와 영조 이금, 철종 이원법만 어진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몇점이 남지 않은 이유는 두차례 전쟁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어진이 보관된 경복국 선원전이 불타면서 이성계와 세조의 어진 외에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중에 몇점 남아 있는 철종어진 고종황제어진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진이라고 하는 것은 왕의 초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어진이라는 용어말고도 진용, 진, 수용, 성용, 영자 등 다양하게 불립니다. 어진의 명칭은 1713년 숙종어진을 그릴 당시에 어용도사도감고 제조 였던 이이면의 건의의 따라서 어진이라는 명칭이 적합다하는 결정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이 그림은 고종황제어진입니다. 대한제국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제작이 되었으며 족자로 된 작품입니다. 비단에 채색을 하였고, 사이즈는 210X116CM입니다.
고종이 원유관과 강사포를 입고 용머리가 장식이 된 기품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입니다. 원유관과 강사포는 신하로부터 조회를 받거나 일본, 유구의 사신을 접견할 때 입는 예복입니다.
이 작품은 철종어진작품입니다. 조선 1861년 비단에 채색하였고 사이즈는 294X112.5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불에 탄 흔적이 보입니다. 당시 원유관을 쓴 강사포 차림의 그림과 여기에 소개가 된 웅복, 즉 전립에 군복을 입은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전자의 그림은 지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2층의 족좌대가 비치는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용무늬가 있는 자리가 깔려있으며 옆에는 칼이 놓여져 있는데, 이는 왕으로써의 위엄과 풍모를 과시합니다.
청종의 얼굴은 젊고 순수한 인물을 반영하듯하며 웅복차림의 그림으로 어진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소실된 그림은 1861년에 그려졌고, 이 그림은 모사품으로 1987년에 그려졌습니다.
철종 12년 도화서에서 그린 철종 어진은 군복을 입은 유일한 조선임금의 초상화입니다. 6.25 전쟁 당시 화제로 인해 1/3 가량이 불에 타서 소실이 되었는데, 이마가 각지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두 광대뼈에는 귀밀털이 덮여있다. 귀의 가장자리는 넓고, 둥글었으며 입술은 두꺼웠고, 손은 컸다 라는 경산일록의 기록과 거의 일치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어진인데도 눈을 사팔뜨기로 그린것이 이채롭다. 그가 세도정치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혼군으로만 평가하는것도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비단에 그려졌으며 자연석채로 그려졌습니다. 비단에 그림을 그릴때는 뒤에를 채색하는 기법인 배체법을 사용하였고, 뒤에는 두껍게 앞에는 얇게 채색이 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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