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M입니다.
오늘은 강세황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며칠전 김홍도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강세황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자 평론가고 그림제작과 화평활동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시 화단에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을 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풍속화 인물화를 유행시켰으며 새로운 서양화법을 수용하는데 있어 많은 기여을 한 화가입니다.
저는 이 초상화를 임모를 했었는데, 문양부터해서 정교함이 있는 작품입니다.
본관 진주, 자 광지, 호 첨재, 표옹, 노죽, 시호 헌정.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8세 때 시를 지었고, 13세~14세 때에는 글씨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소년기에 쓴 글씨조차도 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을 받았고, 매형이었던 임정의 영향도 받았으며 처남 유경종 외에도 허필, 이수봉 등과 절친하게 지냈습니다.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신위와 김홍도 등이 그의 제자였습니다. 벼슬에 뜻이 없어 젊은 시절에는 주로 작품활동만 했는데, 32세 가난때문에 안산으로 이주한 뒤에 오랫동안 서화와 학문에만 전념을 했습니다.
처음 벼슬을 한 것은 61세로 영조의 배려에 침입어서 관계에 진출하게 되었고, 64세 때 기구과, 66세땨 문산정시에 장원급제를 하였으며 영릉참봉, 사포별제, 병조참의,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72세 때 북경사생, 76세때 금강산을 유람하였고, 기행문과 실경사생 등을 남겼습니다. 강세황은 그림제작과 화평활동을 주로 했는데, 이를 통해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위에 있는 초상화는 강세황의 초상화입니다. 1976년 5월 16일 보물 제 590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견본채색한 작품으로 크기 60X 88cm입니다. 이 초상화는 1782년 제작이 되었으며 무릎을 꿇고 앉은 전신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머리에는 오모를 쓰고 유복을 입었으며 철분좌안을 하였습니다. 초상화 윗부분에는 강세황이 쓴 찬문이 적혀있습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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