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M입니다.
오늘은 겸재정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그림을 그렸을 때는 임모작을 많이 했었는데, 그 때 했던 작품 중에 하나가 겸재의 그림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필력을 요하는 작업이라 참 어렵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선이 살았던 시대는 진경시대입니다. 그 시대에는 숙종대에서 명조대까지인데 겸재의 활동기인 영조대에는 진경시대 중에서도 전성기였습니다. 진경시대라는 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양란의 후유증을 극복을 하고 조선 고유의 문화인 진경문화를 이루어낸 시기를 말합니다.
그 당시에 문화의 주도자는 왕조시개의 특성상 군주인 숙종와 영조, 정조지만 구체적인 문화현장에서 당시대가 진경시대임을 작품으로 실증해 주는 이는 정선입니다.
그는 화성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진경을 절묘하게 묘사를 한 산수화의 수요가 폭증을 한것도 그때 쯤이었습니다. 조국 산천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일켤으며 산천 경개 유람하는 국토 순례가 유행을 했었는데, 왕을 비롯해서 궁중 사람들이나 여행 할 처지가 못되는 사람들이 그 사실적 산수화의 수요자 였습니다. 이러한 문화계의 흐름 속에서 진경산수화의 화법을 완성한 화가 중의 확가가 겸제 정선이었습니다.
진경산수화가 겸재가 완성을 하기까지 조선의 독자성을 형성하기 위해 고심한 여러 인사의 시상적, 문화적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문학에서는 송강 정철이 가사문학으로 국문학 발전의 서약을 열었고, 글씨에서는 석봉 한호가 송설체를 뒤어넘는 창강 조숙이 전국을 유람하면서 경재 절송의 강흥을 읊고 그림으로써 전경사회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화보나 다른그림을 모방을 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를 해서 화폭에 담은 산수화입니다. 조선후기의 화가인 조영석은 그림으로 그림을 전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니 물체를 직접 마주 대하고 그 진을 그려야 곧 살아있는 그림이 된다고 하였다고 해요. 그만큼 대상의 겉모습을 묘사한 형사의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신사의 그림을 진경이라고 한것입니다.
그의 진경산수화는 주변의 산화에서 시작을 했는데, 집 주변인 백악산에서 익힌 사생솜씨를 금강산과 영남지방의 풍경으로 확대를 시켜서 진경산수화풍으로 보면 37세인 1712년으로 시인인 이병명의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고 해요.
이 때의 경험을 중년이 된 그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지속되어 59세인 1734년에는 금강상 그림의 하나의 모델이 되어 금강전도를 창출하기를 이르렀습니다.
밀도 높을 표현력과 아름다운 성율과 미묘한 감각의 구성등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조형세계이다. 정선은 사실성보다는 각색력에 의한 재구성과 변형을 통해서 화면을 다이나믹하게 엮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토산에 표현을 한 부드러움과 암산에 적용을 한 날카로운 표현성이 정선의 작품의 양면성을 형성을 하고 있습니다.
두가지의 선의 느낌의 조화로움이 겸재 정선에 표현이 되어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한번 가보고 싶을정도로 각색력이 좋았던 화가. 그 그림은 언제나 웅장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이 있어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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