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M입니다.
오늘은 이이와 이황 중에 이황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이황의 정의
조선전기의 성균관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등을 역임을 한 문신학자입니다.
이황의 개설
이황은 본관은 진보이고, 자는 경호이며 호는 퇴계, 퇴도, 도수입니다.
이황의 활동사항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는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서 좌찬성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의 상을 당했지만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씨의 훈도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갔습니다. 1527년 항시에서 진사시와 생원시 초시에 합격을 했고,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성균관으로 들어가 다음해 진사 회시에 급제를 했습니다.
1533년 재차 성균관에 들어가서 김인후와 교유하였고, 심경부주를 입수해 크게 심취했으며 이해 귀향 도중에 김안국을 만나서 성인군자에 관한 견물을 넓혔습니다.
1534년에는 문과에 급제를 하고, 승문원부정자가 되면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537년에 어머니상을 당하고 향리에서 3년간을 복상했으며 1539년 흥문관수찬이 되었다가 임긍으로부터 사가독서의 은택을 받았습니다. 종종 말년에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먼저 낙향하는 친구 김인후를 한양에서 떠나보냈습니다. 을사사회 후 병약함을 구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1546년에 고향인 낙동강 상류 토계의 동암에 양진암을 얽혀서 산운야학을 벗 삼아서 독서에 전염하는 구도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황의 학문세계와 저서
이황이 주자대전을 입수한 것은 중종 38년 43네때 명나라 가정간본의 복각본이었습니다. 가정간본의 대본은 손나라때 간생된 것을 명나라 때 복간한 성화간본의 수보본이었습니다. 이황이 주자대전을 읽기 시작을 한것은 풍기군수를 사퇴를 한 49세 이후였습니다. 이황이 학문이 원숙하기 시작을 한것은 50세 이후부터였는데, 그 때 학구활동 가운데서 주요한 것을 열거하면 53년 정지운의 천명도설을 개정을 했고 후서를 썼고, 연평답문을 교정을 하고, 후어를 지었습니다.
이이의정의
조선정기의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의 저술한 학자입니다.
이이의 개설
강원도의 강릉 출생으로 본관은 덕수, 자는 숙학 호는 율곡입니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원수이며 어머니믄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신씨입니다.
활동사항
저술로는 성학집요, 동호문답, 경연일기, 천도책, 역수책, 문식첵, 등이 있으며 고산구곡가 등의 문학 작품도 전해집니다.
오늘은 이황과 이이에 대해 간락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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